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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사이로 네가 왔다

04

내 여름에 들어온 여자아이

4화 대표
4화 대표

나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여름방학을 앞두고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차라리 쉽게 도망칠 수 없는 곳으로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강원도 고성으로 가게 되었다.

상봉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터미널에 도착한 뒤에는 다시 버스를 타고 더 들어가야 했다.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여름 한 달 동안 그곳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나는 남해 바다를 보며 자랐다.

그래서 바다가 낯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해 바다는 달랐다.

남해의 바다가 섬과 섬 사이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면, 동해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처럼 보였다.

처음 마주한 동해는 넓고 시원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더 깊어 보였다.

아르바이트에는 20~30명 정도가 참여했다.

모두 대학생이었다.

복학생도 있었고, 나처럼 대학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생도 있었다.

생활은 복학생들을 중심으로 꽤 엄격하게 이루어졌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일과에 따라 움직였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 내가 매일 일찍 일어나야 했다.

누군가에게 간섭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정해진 규율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답답했던 것은 바로 눈앞에 바다가 있다는 것이었다.

해수욕장이니 조금만 나가면 바다였다.

하지만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마음껏 바다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바로 앞에 바다를 두고도 일만 해야 하는 것이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 무렵 짧은 곱슬머리를 한 또래 여자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었다.

일이 힘들어도 늘 웃었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쉽게 지치는 편이었는데, 그 아이는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눈길이 갔다.

같은 곳에서 지내며 함께 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함께 일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힘든 일을 함께 겪다 보니 조금씩 가까워졌다.

어느 날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 그 아이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 말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고된 생활 속에서 나를 걱정해주고 웃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 아이가 웃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 아이 덕분에 나도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일기를 쓰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그날 밤에는 일기를 쓸 수 없었다.

대신 다음 날 아침 조금 일찍 일어나 전날 있었던 일을 적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내가 일기를 쓰는 것을 보았다.

무슨 내용인지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쓴 일기를 보여주었다.

그 아이는 재미있다며 매일 보여달라고 했다.

그 뒤로 나는 아침마다 일기를 썼고, 다 쓴 일기를 그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전날 있었던 일을 적고, 다음 날 그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어느새 하나의 일이 되어 있었다.

일기를 쓰는 동안에는 다음 날 그 아이에게 보여줄 생각도 했다.

나 혼자였다면 중간에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여달라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 계속 쓰게 되었다.

그 아이 덕분에 나는 그 여름의 한 달을 빠짐없이 기록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일기를 보면 그 여름의 풍경과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기록 속에는 그 아이와 함께했던 시간도 남아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혼자 카누를 타고 바다로 나간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노를 저었다.

그런데 해변에서 조금씩 멀어지자 바다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동해 바다는 시퍼렀다.

바다 한가운데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무서웠다.

해변에서는 그저 넓고 아름다운 바다였는데, 혼자 카누를 타고 들어가 보니 그 바다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처음으로 실감했던 것 같다.

고된 일도 많았지만, 그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그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나의 여름은 흘러가고 있었다.

2026.10.05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