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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하루를 보다
선이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
어느 날 선이 내게 말했다.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데 한번 와볼래?”
나도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개인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을 가르치는 일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선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선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선이 일하는 백화점에 찾아갔다.
선의 일을 도와주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백화점이 문을 열기 전에 도착했다.
아직 고객이 들어오기 전이었다.
입구에는 여자 직원 열 명 정도가 줄을 맞춰 서 있었다.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안으로 들어왔다.
직원들은 손님이 지나갈 때마다 허리를 깊이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저기서 인사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도 손님들 사이에 섞여 안으로 들어가다가, 괜히 웃음이 나 살짝 고개를 숙여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이 미리 알려준 층으로 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위쪽을 바라보니 의류 매장 앞에 선이 서 있었다.
선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쪽 한번 보세요.”
사람이 멈추면 상품을 보여주며 설명했고, 그냥 지나치면 다시 다음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의 말을 듣고도 매장을 지나쳐 갔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선은 달랐다. 사람들을 대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평소 동아리에서 보던 선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잠시 후 선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 물건들 좀 옮겨줘.”
매장 안쪽에는 진열할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들고 선이 말한 자리로 옮겼다. 다시 돌아오면 선은 손님을 맞고 있었고, 나는 또 물건을 들고 매장 안쪽으로 향했다.
선은 쉴 틈 없이 손님을 상대했다.
나와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었다.
그날 우리가 나눈 대화는 “이 물건들 좀 옮겨줘”라는 말이 거의 전부였다.
일을 마칠 때가 되자 선도 매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도 마지막으로 물건들을 정리해 놓았다.
“오늘 수고했어.”
“너도 수고했어.”
나는 잠시 선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는 네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줄 몰랐어.”
선이 나를 바라봤다.
“너 정말 대단하다.”
선은 별다른 말 없이 웃었다.
나는 백화점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선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손님이 지나가면 말을 걸고, 다시 다른 손님을 향해 웃으며 말을 건네던 모습이었다.
팔달산에서 들었던 선의 이야기도 함께 떠올랐다.
그때는 선이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날 나는 그 일을 직접 보았다.
선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자기 몫의 하루를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선의 일을 도와주러 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오히려 내가 선에게서 얻어온 것이 더 많았다.
그날 나는 선의 일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선이 살아가는 모습을 조금 들여다보고 돌아왔다.
2026.10.08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