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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사이로 네가 왔다

23

서로의 이야기

22화 대표
22화 대표

동아리에서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유행하던 성룡 주연의 홍콩 액션영화였다.

선이 그 영화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선에게 말했다.

“그럼 같이 볼래?”

사실 나는 극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두운 공간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선이 보고 싶다고 하니, 나도 함께 가고 싶었다.

영화 요금을 아끼려고 조조할인을 이용했다.

아침 일찍 영화관에서 만나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나온 우리는 바로 헤어지지 않고 근처의 팔달산으로 향했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팔달산을 걸었다.

걷다 보니 학교 이야기와 동아리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참을 걷다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집 이야기가 나왔다.

선이 물었다.

“너는 집에 자주 내려가?”

“별로.”

“왜?”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아버지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아.”

“왜?”

“어릴 때부터 그랬어. 아버지가 엄마를 많이 고생시켰거든. 집에도 잘 안 들어오고 밖으로만 돌아다니고…… 나는 그런 아버지가 정말 싫었어.”

선은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온 것도 어쩌면 집에서 도망치듯 나온 것 같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는 선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나는 선을 바라봤다.

“……정말?”

“응.”

“많이 힘들었겠다.”

“뭐…… 어쩔 수 없었지.”

선에게는 네 명의 동생이 있었다.

동생들은 아직 모두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어머니 혼자 네 명의 동생을 돌보기는 어려웠고, 선도 조금이라도 집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나도 일을 해.”

“무슨 일?”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해.”

나는 선이 가끔 동아리 모임에 나오지 않았던 이유를 그때 처음 알았다.

“아르바이트 힘들지 않아?”

“뭐…… 할 만해.”

“내가 뭐 도와줄 게 없을까?”

“괜찮아.”

선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대신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아줘.”

“응. 알겠어.”

나는 선의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늘 밝게 웃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던 선이었다.

그런 선에게 이런 사정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따라 선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불편한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선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선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새 날이 꽤 쌀쌀해져 있었다.

선이 두 손을 비볐다.

나도 옷깃을 여몄다.

벤치에서 일어나야 할 것 같았지만, 우리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잠시 뒤 선이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참을 이야기했다.

한참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달산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날 나는 선의 밝은 모습 뒤에 내가 알지 못했던 삶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선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집을 떠나 대학에 왔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날 팔달산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그날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2026.10.07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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