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나도 네가 좋아
추석이 지나고 다시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주말이면 동아리 모임에 나갔다.
선과도 예전처럼 마주쳤다.
추석 때 긴 시간 동안 통화를 하고 난 뒤라 그런지, 선을 대하는 것이 전보다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아리 모임에 한 동기가 찾아왔다.
그날따라 모습이 달라 보였다.
머리를 아주 짧게 깎고 있었다.
군대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선을 조용히 불러냈다.
두 사람이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를 지나는데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에 가던 길에 우연히 들은 이야기였다.
“나 이제 군대 가게 됐어.”
남학생의 목소리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남학생이 말했다.
“사실 나는 너를 좋아해.”
나는 걸음을 멈췄다.
다음 말이 들려왔다.
“제대할 때까지 나를 기다려 줘.”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잠시 뒤 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나도 네가 좋아.”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지 알 수 없었다.
선이 다시 말했다.
“군대 잘 갔다 오기나 해.”
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발걸음을 돌렸다.
더 듣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틀었다.
거울을 보았지만, 내가 왜 이렇게 되어 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동아리 방의 모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선이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누구에게 웃어 주었는지.
그동안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던 일들이 갑자기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남학생과 선은 원래부터 가까웠던 걸까?’
그 생각이 떠오르자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추석 때 선과 오래 통화했던 일도 떠올랐다.
집들이에서 나에게 밥을 더 주었던 일도 생각났다.
광교산에서 내 옆으로 와서 함께 걸었던 일도 떠올랐다.
나는 그동안 그 일들을 하나씩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나에게만 특별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에게는 나 말고도 가까운 사람이 있었고, 어쩌면 내가 알지 못했던 관계도 있었을 것이다.
그 생각이 이상하게 싫었다.
그날 이후 선을 만나면 예전과 같지 않았다.
선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특히 남학생과 함께 있으면 더 그랬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나와 선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선이 나를 보며 인사를 했다.
“안녕.”
나는 그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못 들은 척 그냥 지나쳐 버렸다.
몇 걸음 지나고 나서야 마음이 불편해졌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날의 이야기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남학생과 선은 친구 사이였고, 선의 말에도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때 나와 선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선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것처럼 느꼈다.
아마 그날이었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질투라는 감정이 처음 들어온 날은.
2026.10.07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