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문득 생각이 났다
추석은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학교로 돌아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주말이면 동아리 모임에 나갔고, 환경 보전 활동에도 참여했다.
선은 한 주 동안 동아리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동아리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선이 들어왔다.
선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친한 친구에게는 손뼉을 마주치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러다 자리에 앉으려다 맞은편에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선은 나를 보며 한쪽 눈을 깜박거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선을 바라보았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그런데 문득, 혹시 누가 내 모습을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선은 추석 때 집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가지고 왔다.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려고 가져온 것이었다.
음식을 하나씩 꺼내 놓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선의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남달랐던 것 같다.
특히 전이 맛있었다.
한두 개 집어 먹다 보니 자꾸 손이 갔다.
아마 선의 음식 솜씨도 어머니를 닮았나 보다.
동아리 사람들도 맛있다며 난리였다.
“정말 맛있다.”
“이거 누가 만든 거야?”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며 한마디씩 했다.
선은 그런 모습을 보며 웃었다.
나는 문득 집들이 때 선이 차려준 음식이 생각났다.
그때도 선은 좁은 방에서 여러 사람에게 음식을 챙겨 주었다.
그때 먹었던 어묵볶음도 참 맛있었다.
그때는 선의 음식 솜씨가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도, 그 음식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맛있게 먹었을 뿐이었다.
음식을 먹으며 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추석에 집에 내려갔던 이야기부터 학교 이야기까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였다.
추석 때 전화로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어서인지, 우리는 전보다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서로 가까이 붙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췄다.
서로의 이야기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그러다 선의 친구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너희 둘이 무슨 얘기해?”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참 눈치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눈치가 빨랐던 친구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추석 때 전화를 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우리 집 전화요금이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선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도 전화요금 많이 나왔어. 엄마한테 한 소리 들었어.”
나도 웃었다.
생각해 보니 참 우스운 일이었다.
우리는 특별한 일이 있어서 전화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느 순간 서로가 생각났을 뿐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고, 목소리를 듣는 것이 반가웠다.
지금 돌아보면 아마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문득 생각이 났던 것.
2026.10.07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