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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추석이 되었다.
나는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여름 방학 때에는 강원도 고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추석이 대학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집에 가는 길이었다.
통일호를 탔다.
대구를 거쳐 돌아가는 노선이라 편도로 7시간이 넘게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기차는 천천히 달렸다.
창밖으로 낯선 도시와 들판이 지나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한 풍경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 앉아 있어 몸은 조금씩 뻐근해졌지만,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았다.
집으로 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기차가 한참을 달리는 동안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집에 도착할 시간을 기다렸다.
지금 생각하면 꽤 힘든 길이었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그 긴 시간이 싫지 않았다.
선도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갔다.
추석 연휴 동안에는 서로 만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고 나니 오랜만에 온 고향집이 편안했다.
하지만 며칠을 집에서 보내다 보니 딱히 할 일이 없어 무료한 시간이 생겼다.
그러다 문득 동아리에서 사용하던 회원 수첩을 뒤적였다.
수첩 안에는 동아리 회원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명부가 있었다.
한 장씩 넘겨보다가 선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적힌 집 전화번호도 보였다.
나는 한동안 그 번호를 바라보았다.
그때는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전화를 하면 뭐라고 할까?’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한번 전화를 걸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려니 조금 망설여졌다.
괜히 전화를 거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번호를 하나씩 눌렀다.
마지막 번호를 누르는 순간, 이상하게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전화를 받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선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뚜… 뚜… 뚜…
신호음이 들릴 때마다 괜히 긴장됐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선이 받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만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혹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 또 한 가지 걱정이 들었다.
혹시 선이 아니라 가족이 받으면 어떻게 하지?
특히 어머니가 받으시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선배인데요”라고 하기에도 이상했고, 그렇다고 동아리 이야기를 길게 설명할 수도 없었다.
괜히 전화를 건 것을 들킬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였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선이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선의 목소리가 이처럼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긴장했던 것이 거짓말처럼 풀렸다.
처음에는 추석에 고향에 내려왔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이어졌다.
동아리 이야기, 학교 이야기, 서로의 고향 이야기.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한 가지 이야기가 끝나면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렇게 통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그날 우리는 꽤 오랫동안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가 전화요금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달에 전화요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지?”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는 시외전화 요금도 만만치 않았다.
차마 내가 건 시외전화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모른 척 듣고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나눴던 그 전화 한 통이 집에는 꽤 비싼 전화가 되어 돌아왔다.
2026.10.07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