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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에서 보낸 하루
2학기 어느 가을날이었다.
우리 동아리에서는 회원들의 친목을 위해 광교산으로 야유회를 갔다.
여러 대학에서 모인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는 동아리였기 때문에 평소에는 동아리방에서 만나거나 환경보호 활동을 함께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이날만큼은 일에서 벗어나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광교산 중턱까지 올라갔다.
산으로 올라가는 동안 버스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오갔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가 멈췄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산불 예방을 위해 불을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왔다.
그때 우리는 당황했다.
산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생각으로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산에서는 불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가스레인지를 챙기는 일은 나와 선이 맡고 있었다.
결국 가스레인지는 우리 손을 떠나 담당자에게 맡겨졌다.
함께 온 동아리 회원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가스레인지를 빼앗기는 모습이 민망했다.
그 부끄러움은 오롯이 나와 선의 몫이었다.
우리는 가스레인지를 두고 일행과 함께 산을 올랐다.
정상에 도착해서는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 함께 점심을 먹었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니 금세 분위기가 좋아졌다.
밥을 먹고 나서는 장기자랑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음치에 몸치, 박치이다.
노래도 춤도 자신이 없었다. 내 앞에 나간 사람들은 노래를 참 잘 불렀고, 박수가 이어질수록 내 차례가 다가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결국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노래를 부르고 이어서 막춤까지 췄다.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곧 웃음이 터졌다.
나도 웃었다.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한 번 하고 나면 끝이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곧 선의 차례가 되었다.
선은 앞으로 나가 ‘조약돌’을 불렀다.
나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그런데 선은 정말 노래를 잘 불렀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조용히 선의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터졌고, 나도 함께 박수를 쳤다.
장기자랑이 끝나고 산에서의 일정도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일행과 함께 산을 내려왔다.
나는 조금 뒤에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급히 내려왔다.
선이었다.
선은 내 옆까지 와서 걸음을 맞추었다.
사람들이 앞뒤로 흩어져 걷는 가운데 우리는 어느새 나란히 걷고 있었다.
나는 선에게 말했다.
“너 노래 정말 잘하더라.”
“뭐, 보통이지.”
나는 피식 웃었다.
조금 전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잘 부르던 사람이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게 선다웠다.
잠시 걷다가 선이 물었다.
“춤도 못 추면서 왜 그랬어?”
“이렇게 해야 다음부터 시키지.”
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제 안 시키겠다.”
그러면서 살짝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앞을 보았다.
조금 전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던 때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 어색했다.
선이 말했다.
“네가 보기에는 범생인 줄 알았는데 이런 끼가 있을 줄이야.”
“나도 이런 줄 몰랐어.”
내가 웃자 선도 따라 웃었다.
우리는 산길을 내려가며 장기자랑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눴다.
별다른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가 춤을 춘 이야기와 선이 노래를 부른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는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선과 나란히 걷는 시간이 조금 더 이어졌으면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 기억에 남은 것은 광교산의 풍경도, 가스레인지도, 사람들 앞에서 춤을 췄던 일도 아니었다.
산길을 내려오며 내 옆에 있던 선의 모습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은 특별한 사건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걷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웃었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 길에서 선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2026.10.07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