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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사이로 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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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선과 걷다

10화 대표
10화 대표

가을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나뭇잎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고, 학교 잔디도 여름의 푸른빛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초록 사이로 금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선의 집들이가 있었던 날 이후, 나는 선에게 밥을 한 번 사주고 싶었다.

집들이에서 직접 음식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챙기던 선에게 고마웠다. 나도 선에게 무엇인가 해주고 싶었다.

어느 날 선에게 말했다.

“우리 학교에 한번 놀러 올래? 내가 밥 살게.”

선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막상 밥을 사주려고 하니 어디로 가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학생식당은 가격이 저렴했지만 맛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선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해놓고 평소처럼 학생식당에 데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객지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나는 매달 받는 용돈을 쪼개 생활하고 있었다. 조금 더 나은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지만, 수중에 있는 돈을 생각하면 마음대로 선택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생각난 곳이 교수식당이었다.

학생식당보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음식은 상대적으로 괜찮았다. 처음에는 이름 때문에 교수들만 이용하는 곳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학생들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이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약속한 날, 나는 교문 앞에서 선을 기다렸다.

오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정말 올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멀리서 선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마구 흔들었다.

선도 나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우리는 가을로 들어선 캠퍼스를 천천히 걸었다.

학생회관을 지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잔디광장에도 여름의 푸른빛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푸르던 잔디 사이로 누렇게 변한 곳이 보였고, 나뭇잎도 하나둘 색을 바꾸고 있었다.

평소 혼자 오가던 길을 그날은 선과 나란히 걸었다.

학생회관도 보여주고, 도서관도 보여주었다. 잔디광장을 지나 내가 다니는 공과대학 건물까지 갔다.

매일 보던 학교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내가 다니는 곳을 선에게 보여주고, 내가 생활하는 공간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무엇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선과 둘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기숙사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남학생 기숙사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우리는 건물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밖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참 학교를 둘러본 뒤 내가 말했다.

“우리 이제 밥 먹으러 갈까?”

우리는 교수식당으로 향했다.

식권을 끊고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아 왔다.

그날 메뉴는 미트볼 스파게티였다.

식판 위에는 처음 보는 음식이 놓여 있었다.

길게 뽑은 국수 같은 면 위에 빨간 토마토 소스가 뿌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다진 고기를 뭉쳐 튀긴 것처럼 생긴 것이 몇 개 올려져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스파게티를 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먹어본 적도 없었다.

선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학교까지 오라고 했는데, 하필 내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나왔다.

‘선이 이걸 좋아할까?’

괜히 걱정이 됐다.

우리는 음식을 받아 마주 보고 식탁에 앉았다.

나는 포크를 들면서도 선의 반응을 살폈다.

선은 스파게티를 포크로 집었다. 긴 면이 포크를 따라 돌돌 말려 올라갔다.

선이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가슴이 콩닥거렸다.

잠시 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맛있네!”

그 한마디에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그제야 나도 포크를 들고 스파게티를 먹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며 조금 전 둘러보았던 캠퍼스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회관과 도서관, 잔디광장, 공과대학 건물.

방금 함께 걸었던 곳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식사 시간도 금세 지나갔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나는 선을 집 근처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버스에서 내린 선과 잠시 마주 서 있었다.

“잘 가.”

짧은 인사를 나누고 선은 정류장에 남았다.

나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천천히 출발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번졌다. 하루 종일 함께 걸었던 캠퍼스와 우리가 지나온 길이 하나씩 뒤로 밀려났다.

문득 사이드미러를 보았다.

선이 서 있었다.

정류장에 남은 선은 내가 탄 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볼 수 없어 사이드미러에 시선을 두었다.

버스가 멀어질수록 선의 모습은 작아졌다.

그래도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바로 옆에서 함께 걷고, 마주 앉아 밥을 먹던 사람이 이제는 저만큼 멀리 있었다.

마침내 사이드미러에서 선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날 하루가 끝났다는 것이 그제야 실감났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혼자였다.

하지만 그날의 캠퍼스와 처음 먹어본 스파게티, 그리고 노을 속에서 멀어지던 선의 모습은 오래 남았다.

2026.10.05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