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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사이로 네가 왔다

39

나란히 걸어도

나란히 걸어도의 삽화

선이 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돌아섰다.

그러다 버스 한 대만 더 기다려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초겨울의 저녁은 일찍 찾아왔다.

나는 정류장 벤치에 앉아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한 대씩 정류장에 들어왔다가 떠났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면 나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지만, 그들 사이에 선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떠나면 다시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몇 대 지나지 않아 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도 조금씩 지쳐 갔다.

해가 기울면서 주변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졌고, 정류장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점차 뜸해졌다.

저녁 무렵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지만, 시간이 더 흐르자 길거리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떠난 뒤 다음 버스가 들어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밤이 깊어지면서 찬바람이 옷깃 사이로 파고들었다.

벤치에 앉아 있자 추위가 조금씩 몸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다시 일어나 정류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몸을 데웠다.

한참을 그렇게 서성이다 보니 추위에 적응한 건지, 감각이 무뎌진 건지 더는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버스 한 대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버스 안을 들여다보았다.

선과 비슷한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순간 선이라고 생각했다. 반가운 마음에 시선이 저절로 그 여자에게 향했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걱정도 되었다.

여자는 내리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걸까.

버스는 다음 정류장을 향해 떠났다.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한산해진 길거리로 버스 한 대가 힘겨운 엔진 소리를 내며 정류장에 들어왔다.

버스 안에서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차벨을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선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선이었다.

나는 버스 뒷문 쪽에 가만히 서 있었다.

문이 열리고 선이 내렸다.

버스 계단을 내려다보며 내리던 선이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나는 손을 가볍게 들어 인사했다.

선은 놀란 눈치였다.

“어, 안녕.” 선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괜찮아?”

“응.” 선은 짧게 대답했다.

선은 큰 가방을 들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선의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자.” 내가 말했다.

인적이 끊긴 골목길에는 방범등 불빛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 길을 함께 걸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선과 나란히 골목길을 걸으며 어색한 침묵을 깨 보려고 말을 꺼냈다.

“선, 저……”

나는 무심코 선의 표정을 살폈다.

선의 표정은 추위에 언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이내 말을 거두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선과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선은 마치 대로 맞은편에서 걷고 있는 사람처럼 멀게 느껴졌다.

선의 집 앞에 도착하자 나는 가방을 건넸다.

“안녕.”

선은 아무 말 없이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2026.10.12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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