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너는 내 처지를 모르잖아
“선아, 너도 이제 네 삶을 살아야지. 언제까지 가족을 위해 그렇게 희생할 거야?”
나는 선이 이제는 자신의 삶을 먼저 생각했으면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생활하며 돈을 벌어 집안에 보태 왔으니, 이제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선은 내 말을 듣고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나라고 내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줄 알아?”
“그런데 왜 계속 그렇게 하는 거야? 너도 이제 네 삶을 생각해야 하잖아.”
“나도 알아.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
선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런데 내가 안 하면 어떻게 해? 동생들은 어떡해?”
“그걸 왜 네가 혼자 책임져야 해? 부모님이 책임져야 할 일이잖아.”
“말은 쉽지.”
선은 짧게 대답했다.
“네가 내 입장이 되어 봤어? 네가 내 처지를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야?”
나는 선의 말을 듣고 당황했다.
“나는 네가 힘들까 봐 하는 말이야. 네가 계속 그렇게 살면 안 되니까.”
“너는 부모님 밑에서 편하게 살았잖아. 그러니까 내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그 말을 듣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선을 걱정하고 있었다. 선이 더는 힘들지 않기를 바랐고, 가족 때문에 계속 희생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데 선은 내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내가 편하게만 살았다고 생각해?”
“적어도 나처럼 살지는 않았잖아.”
선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살았어. 학교 다니면서 돈도 벌었고, 집에 보탤 돈도 마련했어. 나도 힘들었어. 그런데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도 되잖아. 너도 충분히 했어.”
“그만하면 된다고? 그럼 동생들은?”
선은 내 말을 끊었다.
“내가 이제 내 삶을 살겠다고 하면 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건데? 나만 모른 척하면 되는 거야?”
“네가 계속 그렇게 한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어? 네가 힘들어지는 것밖에 더 있어?”
“그래도 동생들이잖아.”
선은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어떻게 동생들을 외면해. 걔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
나는 선이 동생들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동생들을 위해 자신의 삶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선아, 내가 동생들을 생각하지 말라는 게 아니잖아. 네가 모든 걸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거야.”
“너는 네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럼 무슨 뜻인데?”
선은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네 생각만 하잖아. 내가 왜 그러는지는 생각해 봤어?”
나는 선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선이 더는 힘들지 않기를 바랐고, 내가 하는 말이 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은 내 말을 들을수록 답답해하는 듯했다.
“부모라면 자식들을 돌봐야 하는 거잖아. 왜 자식이 부모의 책임까지 져야 해?”
“나도 엄마가 그러는 게 이해가 안 돼.”
선이 말했다.
“나도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도 엄마한테 화가 나. 나도 내 삶을 살고 싶어.”
선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동생들은 어떡해. 내가 걔들을 두고 어떻게 나만 편하게 살아?”
나는 선의 말을 듣고도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네가 그렇게 한다고 어머니가 달라질 것 같아? 동생들이 네 마음을 다 알아줄 것 같아?”
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선은 오히려 내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네가 더는 힘들지 않았으면 해서 하는 말이야.”
선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정말 네 생각밖에 안 해.”
“뭐?”
“너는 너무 이기적이야. 왜 네 생각만 하고 다른 사람 처지는 생각도 안 하는 거야?”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이기적이라는 거야? 나는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잖아.”
“너는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말하잖아. 내가 왜 그러는지는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선의 말에 나는 더 답답해졌다.
나는 선이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랐다. 선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으면서도 동생들을 외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선도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선은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아!”
내가 불렀지만 선은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급히 선을 쫓아갔다. 그러나 결국 놓치고 말았다.
선이 떠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던 걸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선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내 생각이 옳다고 믿고 있었다.
2026.10.12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