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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 척
토요일이었다.
기말고사 준비로 바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시험공부를 해야 했고, 책상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특별히 신경 쓰이는 일도 없었고,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냈다.
일요일 아침,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잠이 완전히 달아나지 않은 채 누워 있다가 문득 오늘 저녁이면 선이 돌아온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선은 기말고사가 일찍 끝나 주말에 고향집에 다녀오기로 했었다. 나는 아직 시험이 남아 학교에 머물러 있었고, 선은 일요일 저녁 기차를 타고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제야 전날부터 느꼈던 허전함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선이 없었다.
오늘 저녁이면 선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선이 돌아올 시간만 기다렸다.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자꾸 저녁이 몇 시쯤 되었는지 신경이 쓰였다.
기차가 도착하기 한 시간 전, 나는 역에 나가 있었다.
아직 전광판에는 선이 탈 기차의 도착 안내가 뜨지 않았다.
나는 전광판을 바라보다가 대합실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좀처럼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기차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나는 개찰구 앞에 섰다.
잠시 후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고, 이내 개찰구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을 찾았다. 혹시라도 놓칠까 봐 눈을 떼지 못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폈다.
그러다 멀리서 선의 모습이 보였다.
선은 짐을 한가득 들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했다. 마치 볼일이 있어 역에 왔다가 우연히 선을 마주친 것처럼.
나는 선이 나를 먼저 발견하기를 바라며, 선의 앞쪽에서 어정쩡하게 서성거렸다.
다행히 선이 먼저 나를 발견했다.
“야, 너 어쩐 일이야? 네가 왜 지금 여기 있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아, 선이구나! 지금 올라오는 거야?”
“응. 혹시 나 보고 싶어서 기다린 거 아냐?”
“아냐. 친구와 약속이 있었어.”
“그래? 친구 누구?”
“너는 모르는 애야.”
나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선이 말했다.
“하여튼 잘됐다. 내 짐 좀 들어 줘. 너무 무거워.”
우리는 곧장 역에서 나와 버스를 탔다.
선의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뒤, 집까지 짐을 날라 주었다.
선의 집은 이틀 동안 비워 둔 탓에 연탄불이 꺼져 방 안에 냉기가 돌았다.
선은 익숙한 솜씨로 번개탄을 이용해 다시 연탄불을 피웠다.
하지만 방이 따뜻해지려면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추운 방 안에 계속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지난번 도서관 사건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말했다.
“내가 우동 살게. 가서 먹고 오자.”
“좋아.”
우리는 우동을 먹으러 가게를 나섰다.
걸어가는 동안 선이 자기 오른팔로 내 팔에 팔짱을 꼈다.
“여기는 너무 춥네.”
나는 선과 팔짱을 낀 채 걷는 것이 싫지 않았다.
우동으로 속을 따뜻하게 채웠다.
어느덧 저녁이 어둑해졌다. 나는 선을 다시 집 앞까지 데려다준 뒤 학교 기숙사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왼쪽 팔이 조금 찌릿했다.
무거운 짐을 들어서 그랬을까?
아니, 짐은 오른팔로 들었는데…….
2026.10.11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