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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사이로 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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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을 켜려다가

형광등을 켜려다가의 삽화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2학기는 빠르게 흘러 어느덧 기말고사 기간이 되었다.

선은 서울에서 학교까지 통학하고 있었다. 등하교에 많은 시간이 걸렸기에 평일에 따로 만나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에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했다.

당시에는 도서관 출입카드 시스템이 없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기에 일요일에도 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서관에 들어선 시간은 늦은 아침이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열람실은 이미 만원이었고, 빈자리도 없었다. 우리는 개가실 한쪽에 있는 탁자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나는 시험 준비에 필요한 책부터 찾았다.

당시에는 컴퓨터로 책을 검색할 수 없었다. 도서관 중앙에는 한의원의 한약장처럼 작은 서랍이 빼곡하게 달린 나무 서랍장이 놓여 있었다. 서랍마다 책의 제목과 저자 등이 적힌 도서 검색 카드가 들어 있었다.

나는 서랍을 열어 카드들을 하나씩 뒤지며 필요한 책을 찾았다. 책을 찾으면 서가로 가서 해당 책을 골랐다.

책을 빌릴 때는 책 뒤쪽에 붙어 있는 도서대출카드를 꺼냈다. 카드에 대출자 이름과 대출 날짜 등을 적은 뒤 책과 함께 사서에게 건넸다. 사서는 내용을 확인하고 도장을 찍어 주었다.

필요한 책을 빌린 뒤 선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실내가 어두웠다. 우리가 앉은 쪽의 형광등이 꺼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형광등을 켜기 위해 벽 쪽으로 갔다.

벽에는 스위치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중 하나를 올렸다.

그 순간, 형광등 대신 요란한 사이렌이 울렸다.

화재 경보 스위치였다.

나는 무척 당황해 순간 어쩔 줄 몰랐다. 도서관에 있던 사람들은 놀란 듯 모두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얼른 스위치를 내렸다.

다행히 사이렌 소리는 사라졌다.

멀리 앉아 있던 선의 얼굴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말없이 자리로 돌아왔다. 선도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선이 말했다.

“우리 나가자.”

“응.”

나는 짧게 대답하고 선을 따라 나왔다.

나 때문에 우리의 공부 계획은 틀어졌다.

도서관 밖은 제법 쌀쌀했다.

우리는 학생회관에 있는 매점으로 갔다.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선이 말했다.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이야?”

나는 멋쩍게 웃었다.

“미안해, 나 때문에 공부도 못 하고…….”

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냐, 재미있고 좋은데 뭐.”

코코아를 다 마신 뒤 내가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밥이나 먹고 가라.”

우리는 학생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도서관에서는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었다. 나는 선을 학교 앞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다시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다음에 내가 맛있는 밥 사 줄게!”

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이 탄 버스가 떠나고, 거리에는 초겨울 바람에 낙엽이 뒹굴었다.

2026.10.11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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