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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사이로 네가 왔다

32

토요일의 서점

30화 대표
30화 대표

토요일이면 으레 서울에 있는 서점을 찾았다.

아침 일찍 서울로 가는 전철을 타고 집을 나섰다.

전철 안에는 나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신문을 펼쳐 읽는 사람도 있었고, 창가에 기대어 졸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전철이 역을 지나갈 때마다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서둘러 전철에 올라탔고, 누군가는 문이 닫히기 전에 뛰어왔다.

전철이 출발하면 역과 사람들이 뒤로 빠르게 밀려났다.

건물 사이로 보이던 골목도, 길을 건너는 사람들도 잠깐 눈에 들어왔다가 금세 사라졌다.

나는 그런 풍경을 보는 것이 좋았다.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이 각자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이 좋았다.

시청역에서 내려 광화문 쪽으로 걸었다.

서점에 들어서면 새 책에서 나는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그 냄새가 묘하게 나를 들뜨게 했다.

나는 서점 안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꼭 책을 사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붙잡고 한참을 읽었다.

그렇게 책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시간이 흘러 있었다.

토요일 하루를 그렇게 보내는 것이 좋았다.

그날도 여느 토요일처럼 서점 한쪽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책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잠시 귀를 기울였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였다.

다시 책을 보려 했지만 자꾸 신경이 쓰였다.

나는 책에서 눈을 떼고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점원 앞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등을 따라 내려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뒷모습이었다.

그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얼굴이 보였다.

선이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동아리에서 늘 보던 선이 서점에 있었다. 토요일마다 혼자 찾아오던 이곳에서 선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선을 발견하고도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먼저 인사를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지난 동아리 모임에서 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근데 왜 나를 안 보고 이야기해.’

나는 괜히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선이 점원에게 책을 받아 들고 돌아섰다.

나는 다시 책을 바라보았다. 괜히 책장을 한 장 넘겼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다시 한 장을 넘겼다.

잠시 후 선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결국 책에서 눈을 들었다.

그리고 선과 눈이 마주쳤다.

“어? 여기서 뭐해?”

선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책 보러 왔지.”

“혼자?”

“응.”

선은 내가 들고 있던 책을 잠깐 들여다보더니 웃었다.

“너 이런 책도 봐?”

“공대생은 책 보면 안 되냐?”

선이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잠시 어색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선은 토요일에 서점에 온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손에 든 책을 보여주며 찾느라 한참 돌아다녔다고 했다.

우리는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책을 둘러보았다.

나는 평소 어떤 책을 읽는지 이야기했고, 선은 관심 있는 책을 찾아보았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책 한 줄 읽지 못하던 나는 어느새 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 동아리 모임에서 선을 피하려 했던 일이 잠시 생각났다.

그때는 선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먼저 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서점을 나와 우리는 함께 전철을 타고 수원으로 돌아왔다.

나란히 자리에 앉은 우리는 서점에서 보았던 책에 관해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대화가 끊기면 각자 창밖을 바라보았다.

선은 가끔 창밖을 보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내게 말을 건넸다. 나도 그때마다 짧게 대답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함께 돌아가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지난 동아리 모임에서 선을 피하려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선과 마주 앉는 것조차 어색했는데, 지금은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나는 옆에 앉은 선을 슬쩍 바라보았다. 선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를 의식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이렇게 나란히 앉아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낯설면서도 편안했다.

초겨울이라 해는 일찍 저물었다.

우리가 한강을 건널 무렵, 도시에는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나와 선은 나란히 앉아 유리창 너머로 어둑해지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초승달은 우리 뒤편 유리창 너머에 조용히 걸려 있었다.

2026.10.08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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