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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 2
선의 시간 2
처음에는 그저 동아리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가 보이면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같은 자리에 있어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었다.
왜 그런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와 있으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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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 택시를 탔던 날이었다.
택시기사가 부당한 요금을 요구했고, 그는 그냥 넘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팔을 잡았다.
“그냥 내자.”
그가 따질 일이 걱정된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일이 커질까 봐 그를 말리고 싶었다.
그때는 그것이 왜 그렇게 마음에 걸렸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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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는 사소한 일에도 잘 웃었다.
배드민턴을 치다가 라켓 줄이 끊어졌을 때도 한참을 웃었다.
추석이 지나 집 전화로 통화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화요금 때문에 어머니에게 혼이 나면서도 그의 전화를 받았다.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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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그가 나를 피했다.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다.
말을 걸어도 예전 같지 않았고, 괜히 나와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나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그가 왜 그러는지 알고 싶었지만 묻지는 못했다.
나중에 그가 다른 남학생에게 했던 내 말을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그가 나와 거리를 두는 것이 내게는 생각보다 불편한 일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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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까워진 뒤에는 그에게 부탁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무거운 쌀을 옮길 때도 그와 함께했고, 함께 다른 학교에 가기도 했다.
무언가 부탁할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그가 떠올랐다.
그에게 부탁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만큼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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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산에서는 내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이야기와 동생들 이야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이유까지.
쉽게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아줘.”
그는 알겠다고 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에게 말한 뒤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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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백화점에도 그를 불렀다.
손님을 맞느라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지만, 그가 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루가 끝난 뒤 그가 말했다.
“나는 네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줄 몰랐어.”
그리고,
“너 정말 대단하다.”
나는 웃었다.
그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쑥스러웠다.
그날은 평소보다 오래 그 말이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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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를 잠시 놓쳤다.
뒤를 돌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를 찾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았다.
“뭐해, 빨리 따라오지 않고?”
손을 잡고 나니 다시 놓기가 조금 아쉬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앞장서 걸었다.
시장을 다 보고 나서는 찹쌀 도나스를 사서 그에게 건넸다.
“수고했어.”
그는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함께한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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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본 뒤에는 그를 내 자취방으로 데려갔다.
“이왕 장 본 김에 우리 집에 가서 밥 해 먹자.”
내가 사는 곳을 보여주는 것도 이제는 별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연탄불 앞에 쪼그려 앉아 어묵볶음을 만드는 그를 보며 웃었다.
“간장은 얼마큼 넣으면 돼?”
“적당히.”
“그러니까…… 몇 ml 넣어야 돼?”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와 있으면 이런 사소한 일도 재미있었다.
그는 냉동 양념갈비까지 사 왔다.
둘이서 연탄불에 고기를 익혀 먹었다.
별것 없는 저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의 모습은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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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 사람에게는 내가 보여준 것이 많았다.
내가 힘들었던 이야기.
내가 일하는 모습.
내가 사는 방.
그리고 내 하루의 자잘한 일들.
그가 곁에 있는 것도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오히려 보이지 않으면 한 번쯤 찾게 됐다.
그때는 그것을 특별한 마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저 그 사람이 있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고,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한 번 더 생각이 났다.
그 정도였다.
2026.10.08 발행